2008년 통권 제2호

목차

편집부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2, 2008.11, 2-3 (2 pages)

권두언

김창남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2, 2008.11, 5-7 (3 pages)

김민기, 근대의 비판적 지식인

이영미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2, 2008.11, 8-33 (26 pages)

초록
이 글은 한국의 대표적인 포크송 가수이자 비판적 싱어송라이터 김민기에 대한 작가론이다. 김민기라는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세상에 어떤 태도를 가진 사람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김민기의 작품은 당시 대중가요사의 흐름에 비추어볼 때 상투성을 탈피한 참신한 작품들이다. 이는 1960년대까지의 한국 대중가요에서 잘 구현되지 않던 근대 서양음악의 화성과 구조 등을 비교적 튼튼하게 구현했기에 가능한 평가이다. 즉, 그의 참신성은 기발하다기보다는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당시 대중가요의 익숙한 경향을 탈피한 결과였다.
김민기 작품의 가사에 나타나는 사회와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1970년대 초 한국 포크송이 공유하는, 순수와 오염의 이항대립적 사고틀 안에 있다. 하지만 그는 주로 사랑이야기에 머물고 있던 여타의 포크송들과 달리,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억압적인 세상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모색을 적극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한국 포크송의 인식 지평을 확대했다.
김민기 작품 속의 자아는 감정이나 욕망을 외향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절제하는 태도를 지닌다. 그가 보여주는 자아는 바깥세상의 여러 정보를 받아들여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추어 재구성하고 의미화하는 지적이고 자의식 강한 근대적 자아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태도는 전근대적 혹은 탈근대 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근대적이다. 김민기 작품의 자아는 적게 움직이고 많이 생각하는 근대적 지식인의 사유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이는 그가 즐겨 쓰는 리듬 패턴에서도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김민기의 이러한 특성은 격렬한 투쟁이 중시되었던 1980년대의 학생운동 시기에, 머리로 깊게 사고하기보다는 행동과 실천이 앞서는 노동자·농민 대중들에게 그리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후 음악극 작품에서 나타나는 역동적인 대립구조의 미흡함과도 무관하지 않다.

아름다움을 향한 전진, 문승현의 음악

김병오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2, 2008.11, 34-58 (25 pages)

초록
많은 사람들이 노래운동의 역사를 되짚어보고자 할 때 대부분 김민기와 김호철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시기로 치자면 대략 1980년대 벽두부터 1987년에 이르는 기간이며 운동의 역사로 치자면 가장 강렬했고 치열했던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대개 광장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시절로, 김민기는 <아침이슬>로만 존재했고 김호철은 아직 무대의 전면에 나서기 이전이다. 이 시기에도 노래운동이 대중운동에 끼쳤던 영향력은 상당했다. 하지만 1970년대의 노래운동이 김민기로 표상되고 1989년 이후의 그것이 김호철로 표상되는 데에 비해, 1980년대의 노래운동을 이끌었던 표상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는 작곡가 문승현은 바로 그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이끈 사람이다. 그의 행보는 1980년대 노래운동에서 가장 큰 궤적을 그렸으며, 그의 지향과 취향은 전체 운동진영의 음악적 지향과 취향이 되기도 했다. 그의 미적 지향과 운동적 행보를 이해하는 것은 1980년대 노래운동의 양상을 이해하는 일의 기초이자 핵심이다.

1980년대 시대의식과 민중가요

정경은식별된 저자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2, 2008.11, 59-80 (22 pages)

초록
1980년대에 불리고 창작된 민중가요는 민중가요사가 지닌 전반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1980년대는 1990년대 이후까지 오래도록 불리는 노래들이 나온 시대였고, 가장 많은 민중가요가 창작되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 시기의 민중가요는 민중가요의 보편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 글은 그중에서도 시대의식 측면에서 고찰했다. 민중가요는 당시 시대를 식민지로 규정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인식을 보이고 있으며, 노래의 향유자들은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투쟁의 선봉에 서고자 했다. 또 한 가지의 특징은 투쟁을 신성한 대상으로 규정하고 싸움을 성전(聖戰)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 ‘꽃’의 이미지는 투사의 죽음 혹은 분신행위와 연결되는 등 특이하게 나타난다. 즉, 이 같은 특성들로 민중가요는 1980년대의 시대상황 그리고 시대인식과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전반기 한국 대중가요와 디아스포라

장유정식별된 저자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2, 2008.11, 81-109 (29 pages)

초록
이 글은 디아스포라를 소재로 한 20세기 전반기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그 양상과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디아스포라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의 전반적인 특징으로는 ‘가사와 음악의 부조화’와 ‘이동과 경계의 강조’를 들 수 있다. 디아스포라와 연관된 노래 중에는 슬픈 가사가 빠른 템포와 어우러진 예가 많았는데, 이는 기차와 썰매와 같이 이동 수단을 제재로 한 노래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기차와 썰매라는 운송 수단의 속도감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가사와 음악의 부조화 현상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디아스포라 관련 노래에 국경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국경이 고국과 타국을 나누는 운명의 경계선이었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를 나타낸 노래는 크게 ‘이동 중의 만감’과 ‘정착 중의 감상’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었다. 디아스포라 관련 노래 중에는 기차와 썰매를 타고 이동하는 화자의 만감을 표출한 노래가 많았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화자가 주로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 집착했다면 썰매를 타고 이동 중인 화자는 현재의 심경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토로했다. 그러나 모두 공통적으로 고국을 떠나는 화자의 비애감을 표출했다. 마지막으로 정착 중의 감상을 드러낸 노래에서는 여전히 정착하지 못한 채, 타국을 떠도는 나그네 신세의 비애와 슬픔을 표현한 노래가 많았다. 고국을 떠나 타국으로 간 우리 민족들은 대부분 여전히 경계인이면서 주변인으로 지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디아스포라를 소재로 한 노래는 일제시대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는 노래로 한국 대중가요사(大衆歌謠史)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래들을 통해 당시 한인 이주의 감춰진 역사를 추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박노홍(朴魯洪)과 대중가요 : 작사(作詞)에서 작사(作史)까지

이준희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2, 2008.11, 110-143 (34 pages)

초록
박노홍(1914~1982년)은 일제시대 대중가요 작사가 가운데 현재 확인되는 작품 수가 네 번째로 많은 중요한 작가이다. 그는 다양한 필명으로 1960년 무렵까지 많은 대중가요 가사를 썼고, 말년에는 한국 대중가요 역사를 정리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대중가요와 관련된 박노홍의 활동을 대중가요 작사와 가요사 집필의 두 측면으로 정리했다.
박노홍의 필명으로 이미 확인된 것은 강영숙, 노다지, 이노홍, 이부풍, 이사라 등이 있는데, 거기에 더해 김화암, 박화산, 조화암, 화산월 등도 그가 1945년 이전에 사용한 필명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1937년 이후 빅타레코드 전속 작사가가 되어 이부풍 등의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한 박노홍은 그밖에 콜럼비아레코드나 오케레코드에서도 이노홍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1940년 이후로는 전속계약을 맺지 않고 작사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무렵부터 대중가요 작사보다는 극작에 더 주력했기 때문에 이전에 비해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기도 했다.
1945년 광복 이후 박노홍은 악극이나 영화 관련 활동에 전념했으므로, 작사가로 활동한 흔적이 영화주제가 외에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1961년 이후에는 사업 실패 등으로 10년 정도 잠적한 탓에 박노홍이 작사한 작품이 다른 사람 명의로 바뀌거나, 다른 사람의 작품이 박노홍의 필명 명의로 바뀌는 경우가 생겼다. 이에 관한 경위는 아직 불분명하나 박노홍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잠적을 끝내고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박노홍은 1978년에 ?한국대중가요사?를 집필했고, 그것을 좀 더 보완해 1980년에 ?한국가요사?라는 제목으로 다시 발표했다. 박노홍의 ?한국(대중)가요사?는 적지 않은 한계가 있기는 하나, 일제시대부터 대중가요 생산 현장에 직접 몸담아왔던 이의 기록이라는 점, 그리고 집필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엄혹했는데도 분단으로 왜곡된 한국 대중가요사를 부분적이나마 복원하려고 시도했다는 점 등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70년대 한국 청년문화의 문화적 정체성 : 통기타음악을 중심으로

김창남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2, 2008.11, 144-165 (22 pages)

초록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1970년대의 통기타음악은 몇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1970년대의 통기타음악은 한국 대중음악 사상 처음으로 젊은 세대의 문화가 기존의 주류 대중음악 질서를 전복하면서 새로운 주류를 형성한 세대혁명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한국 문화 전반이 과거 일제강점기를 통해 형성된 문화 질서로부터 미국 문화의 영향 속에서 새로운 문화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1970년대의 한국 모던포크가 가지는 중요성은 그것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 대중음악의 절대적영향 속에서 태동했으면서도 한국 청년세대의 감성과 의식을 담보하는 한국적 청년문화의 양상으로 발전해갔다는 점에 있다. 주로 외국 음악의 번안으로 시작되었던 통기타음악은 개성적인 싱어송라이터들의 등장과 함께 상당히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는 정치적인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모던포크부터 낭만적인 팝 성향의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적 경향이 존재했다. 이러한 다양성이 존재했는데도 통기타음악이 흔히 한 묶음으로 취급되는 것은 그것이 당대의 사회적 질서와 상당한 길항 관계를 형성했고 정치권력에 의해 매우 직접적인 통제와 억압을 받아야 했으며 결국 시장에서 사실상 강제로 퇴출되어야 했다는 사정 때문이다. 이 글은 1970년대 한국 통기타음악이 미국 문화에 대한 모방에서 출발해 미묘한 변화를 겪으며 한국적인 청년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 문화적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월드뮤직으로서의 국악, 그 가능성의 모색 : 장사익의 사례를 중심으로

박애경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2, 2008.11, 166-187 (22 pages)

초록
국악은 우리의 전통음악을 광범위하게 이르는 말이다. 그 주위에는 서양의 고전음악인 클래식과 동시대 대중이 향유하는 대중음악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국악이 존재하는 방식은 크게 정전(正典)의 전통성에 기대어 공적 문화재로 존재하는 방식과 노년층의 기억에 의존해 위락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뉜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동시대와 의미 있게 소통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국악의 현대화와 대중화 논의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국악과 타 장르의 융합은 간헐적으로 시도되었지만, 최근 국악계의 움직임은 동시대 대중음악과 소통하는 차원을 넘어 대중음악을 국악의 영역에 포섭하려는 시도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장사익을 통해 국악이 동 시대와 소통하는 방식을 살피고, 나아가 ‘월드뮤직’으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장사익은 1994년에 뒤늦게 데뷔한 이후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지닌 음악인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어디에나’ 속하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음악계의 섬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1993년 전주대사습놀이를 통해 직업 음악인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딱히 제도화된 국악의 어느 영역에 속한다고 하기 어렵다. ‘한국적’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지만 한국의 음악 시스템 그 어디에도 속하기 어려운 그의 음악은 ‘퓨전’이라는 범박한 말로 대신할 수 있다. 문제는 퓨전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국악과 대중음악의 소통을 넘어 대중음악을 국악의 영역에 포섭하려는 국악계의 최근의 흐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음악적 모국어를 지키면서 동시대와 소통 가능한 국악의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는 ‘국악의 월드뮤직화’가 그것이다. 광장에서, 청담동 클럽에서 치러지는 ‘국악축전’은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곧 ‘국악의 대중화’라는 차원을 넘어선 ‘국악의 대중음악화’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국악계의 최근 동향과 장사익의 활동을 ‘국악의 월드뮤직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는 ‘우리의 전통’ 혹은 ‘우리의 음악’이라는 가치가 덧씌워진 국악을 비로소 타자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통상 월드뮤직은 앵글로 아메리칸의 음악, 즉 영미의 팝 음악을 제외한 전 세계 전래 음악 중 하나의 장르로 공인되지 않은 음악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부가된다. 즉, 자국의 민속음악에 뿌리를 두어 자국의 문화적 전통을 반영하면서도 산업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한국적 상황에 놓고 보면 월드뮤직이란 ‘대중과 소통가능하고 마케팅의 대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음악으로 한국 민속음악의 전통을 반영한 음악’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장사익의 활동은 ‘국악의 월드뮤직화’에 대한 하나의 탐색인 셈이다.

한국 대중문화 유산을 보존할 토대를 건립하라

최규성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2, 2008.11, 188-201 (14 pages)

논문집 심사 규정 외

편집부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2, 2008.11, 202-204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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