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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통권 제4호

목차

편집부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4, 2009.11, 2-3 (2 pages)

권두언

김창남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4, 2009.11, 2-3 (2 pages)

​학술대회 발표논문

‘노래시’ 창작교육 방안 연구 : 창작 비(非)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수업 실제를 중심으로

임수경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4, 2009.11, 9-37 (29 pages)

초록
이 연구에서는 시와 노래라는 장르의 이분법을 지양하고, 현대사회에서 소통될 수 있는 시와 노래의 합일지점으로 ‘노래시’를 제시하면서, ‘노래시 창작’의 목적 및 과정에 접근하는 교육방법 시론(試論)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시 시(詩)와 노래[歌]는 하나였다. 이러한 시원(始原)을 전제로 해, 이 연구에서는 학습자의 문학(문화)적 사유를 체계적으로 확장·적응시키고, 그 표현의 방법으로 ‘시’ 형식을 차용해 ‘노래’로 발현시키는 교육방법론에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본 연구방법이 적용되는 수업은 창작교양실기 과목이다. 따라서 이 ‘노래시 창작교육’은 단순히 ‘노래시를 쓴다’는 수동적인 발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시 창작교육의 목적인 ‘표현능력’의 신장에 한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노래시의 창작을 통해 문화(문학)를 이해하고 사유를 표현한다는 방향으로 거시적인 목표를 설정한다. 본질적으로 성찰적 기능과 인문적 사유의 훈련, 그리고 재인식과 재창조로의 이행까지의 과정을 포괄적으로 함유하게 된다.
이 연구에서는 교육전제와 방법론이 적용된 실제 수업에 대한 분석과 결과 도출, 방법론 점검까지 다루고자 한다.

‘디지털저작권거래소’의 가능성과 한계

전현택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4, 2009.11, 38-58 (21 pages)

초록
이 연구의 목적은 공공부문에서 추진되고 있는 ‘디지털저작권거래소’의 가능성과 한계를 음악산업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디지털저작권거래소’는 2000년대 초반 음악시장 변화에 대한 정부의 경험과, 시장의 활용을 강제하기 어려운 고비용의 ‘콘텐츠식별체계’ 때문에 공공에서 시작되었다. ‘디지털저작권거래소’가 안정화되고 저작권양도거래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창작자가 직접 사업자와 권리사용계약이나 권리양도계약을 진행하게 되면 저작권집중관리단체는 시장에서 점점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초기단계 핵심 행위 주체인 저작권집중관리단체의 자발적인 참여를 요구하기 어렵게 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디지털저작권거래소’ 기능에 저작권집중관리단체들이 소비자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1980년대 한국 싱어송라이터 스타일 : 시인과 촌장의 <고양이>와 어떤 날의 <그런 날에는>의 악곡 분석

박기영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4, 2009.11, 59-96 (38 pages)

초록
싱어송라이터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만든 창작곡을 자신이 직접 부르는 아티스트들을 일컫는 보통 명사로 사용됨과 동시에, 1960년대 이후 대거 출현하는 특징적인 자작곡 뮤지션들의 음악을 따로 분류한 하위 스타일의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이 하위 스타일을 범주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작가와 청취자 간의 직접적인 사고와 정서의 교감’이 발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그런데 작가와 청취자들 사이에 구체적인 교감이 발생하려면 삶과 일상에 대한 그들의 직접적인 체험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싱어송라이터 음악은 현대인들의 일상과 상념을 노래하는 현대의 포크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싱어송라이터라는 용어는 주로 밥 딜런 이후 출현하는 자작곡 뮤지션 군단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싱어송라이터 스타일은 ≪김민기 1집≫(1971) 이후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주로 포크음악에 뿌리를 두고 등장하는 일련의 자작곡 뮤지션들의 음악을 지칭한다. 1973년경이 되면 한국의 포크 진영은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주류 진영으로 진출하는 뮤지션들과, 서정성과 메시지를 중요시하는 언더그라운드 포크 뮤지션들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이들의 작품 경향은 상대적으로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자신의 예술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쪽에 초점이 맞아 있었고, 따라서 이 계열에서는 내면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 김민기와 함께 방의경, 김의철, 이정선 등은 초창기 한국 싱어송라이터 스타일의 대표 뮤지션들이다.
대마초 파동으로 비롯한 1970년대 중반 청년문화의 진공상태는 이정선, 정태춘, 고 이주원, 조동진 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으로 서서히 다시 채워졌다. 그들 중에서도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싱어송라이터 조동진은 1980년대의 싱어송라이터 스타일의 발원지가 되었다.
1집과 2집에 담긴 조동진의 음악들은 매우 어둡고 사색적이며 노랫말은 은유의 베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조동진의 음악에는 시대적 상황을 고발하는 리얼리티가 깃들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조동진은 1970년대 후반의 시대적 어둠을 음악적으로 가장 리얼하게 표현해낸 아티스트였다. 문학적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오히려 음악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의 노래들은 더욱 구체적인 형상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적 리얼리티야말로 1980년대 초의 음악 대중들로 하여금 그의 음악에 귀 기울이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1980년 광주를 거치면서 한국의 모던 포크 음악은 크게 두 갈래의 흐름으로 전개된다. 그 하나는 김민기로부터 시작되어 ‘메아리’,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이어지는 비판적 노래운동의 흐름이었고, 또 하나는 ‘따로 또 같이’와 ‘시인과 촌장’, ‘어떤 날’ 등으로 대표되는 포크 예술화의 흐름이었다.
예술적 완전주의를 향한 그룹은 소극장 콘서트와 앨범의 완성도를 통해 80년대 한국 음악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하덕규, 함춘호 듀오의 ‘시인과 촌장’이 1986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은 그러한 포크 예술화 흐름의 정점을 찍었다.
또한 ‘어떤 날’의 조동익과 이병우는 1980~1990년대 한국대중음악 최고의 음악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집의 <하늘>과 2집의 <그런 날에는>의 편곡과 연주 등에서는 프로그레시브 록과 퓨전 등 당대 서양대중음악의 양식들이 이들 음악감독들에게 미친 영향을 확실하게 엿볼 수 있다.
1990년대 접어들어 한국대중음악은 재기발랄하고 개성 넘치는 싱어송라이터들을 훨씬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타일로서의 싱어송라이터 음악은 급격히 퇴조해버렸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선배 아티스트들이 이루어놓은 음악적 결실이 상당부분 단절되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1980년대 싱어송라이터 스타일의 음악은 우리가 잃어가는 기억들, 삶과 일상의 구체적인 기억들을 환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스타일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통해 21세기 한국인들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삶의 체험과 내적 성찰, 현대사회의 소외를 극복할 공동체적인 체험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일반논문

일제시기 음반산업계에서 한국인 중개자의 역사적 주체성 고찰 : 접촉영역에서 식민자 - 피식민자의 상호적 주체구성의 관점에서

야마우치 후미타카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4, 2009.11, 97-184 (88 pages)

초록
이 논문은 1930년대 음반산업계에서 매개적 역할을 수행한 한국인들을 사례로 삼고 역사서술에서 피식민자의 주체성이라는 쟁점을 고찰했다. 이를 위해 접촉영역(contact zone)이라는 분석개념을 도입해 식민자와 피식민자가 비대칭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 대면하고 상호작용한 제 양상을 검토하고자 했다. 특히 음반산업계에서 한국인 중개주체의 구성에 주목하며, 그와 일본인 경영주체 사이의 간주체적(inter-subjective) 상호관계가 펼치는 미시적 수준에서 한국음반 제작이라는 식민지 문화생산의 자율성/타율성 문제를 풀어나갔다.
우선 2절에서는 한국에서 민족레이블 창출이라는 활동에 관한 기존의 역사 서술을 검토했다. 오케라는 레이블을 중심으로 그것과 관련한 역사에서 한국인이 집단적 주체=주어로 서술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분석을 통해 기존의 역사서술이 당시 음반산업계의 거시적인 사회구조나 일본 본사의 전략 등을 극소화하거나 생략함으로써 일본인과의 제국적 연관성을 절단하고 한국인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을 부각시키는 경향을 지적했다.
3절에서는 거꾸로 일본 경영진 측의 역사적 주체성, 즉 그들이 한국인 중개자를 영입하게 된 경위나 전략을 분석했다. 일본 본사의 입장에서는 한국시장에서 한국음반을 만들고 팔며 이익을 얻기 위한 효율성 때문에 한국인을 중개자로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영입된 한국인들이 본사의 전략에 종속된 객체로 움직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나름의 전술이나 포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그 새로운 산업계로 뛰어들었다. 이 논문은 그러한 한국인들을 문화적 중개자로 개념화했고, 일본인 경영주체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구성되면서도 핵심적인 매개행위들을 담당한 중개주체로 규정했다.
이 같이 접촉영역에서 상호적인 간주체성 구성이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4절에서는 일본인 경영진의 필요와 한국인 기업가의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만나고 교섭하고 맞아떨어졌는지에 대해 살펴나갔다. 우선 일본 측 자료를 분석해, 당시 일본 관계자들이 한국음반 제작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보다는 오히려 식민지 음악자원 전반에 대한 구조적 무관심이라 할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었음을 밝혔다. 나아가 이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음반 제작에서 한국인 중재자들에게 더 많은 자율공간을 허용한 것으로 논했다. 그러나 그 자율공간이란 접촉영역 속에서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 즉 식민지 지배자와 연관된 것이었다. 이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마지막 절은 음반산업계 내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상호적 인식과 경험을 미시적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자 했다.

평론

정태춘, 그 치열한 진정성의 아름다움

김창남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4, 2009.11, 185-211 (27 pages)

‘홍대앞 여성 싱어송라이터’ 현상에 대한 단상

최지선
한국대중음악학회, 대중음악 4, 2009.11, 212-229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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